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한번 정정당당하게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가로놓여 있다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
유희열의 앨범을 보면 함께해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꽤나 길게 느껴졌던 3개월간의 도시 노동자로서의 삶이 끝났다. 이런저런 목표들을 세우고, 잊어버리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며 '나'를 잊어버리지 않으려 애썼다. 주 6일의 노동과 수많은 인파와 커다란 버스가 내뿜는 열기와 소음들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다. 잠시 돌아 볼 여유도 없었다. 그럼과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을 잘 해내며 사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인가 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묻게되는 것은 사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 또다시 흔들릴 것이 자명하지만 결국은 나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며 함께 사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어떻게해야 여유를 잃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지는 여전한 숙제이다. 결국은..
야심차게 시작한 서울살이는 어찌, 블로그 주소도 까먹어 잠시 머뭇거릴 정도로 여유가 없는 생활이 되어버렸을까. 돈도 없고, 시간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 한 달이었다. 주 6일의 노동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켜,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어 3월을 훌쩍 넘겨 4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싹이 움트고, 꽃이 피었지만 몸의 고단함이 마음까지 지배하여 나는 그 어떠한 봄도 보지 못했다.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나’도 사랑하는 나은이도, 그 밖의 소중한 사람들도 모두 잃어버릴 수 있겠구나 싶어 아찔한 날이다.
0. 지호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처음 도착했을 때 좀 괜찮아졌나 싶었지만 지은이와 지호는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는 없었다. 안아주지도 못했다. 그저 밥 많이 먹어라, 잠 좀 자둬라 하는 말들이나 몇마디 던질뿐이었다. 대충 두가지 이유로 이 마음이 설명되는데, 첫째로는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음, 혹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한 무력함이고 둘째로는 연민을 모두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저 한 때 함께 울고 웃었던, 한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던 당신의 친구로서 당신의 커다란 슬픔을 위로합니다.라는 마음을 어찌 전달해야 할지 몰랐다. 만 하루가 안되는 시간 동안 수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건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건지 둘 사이를 오가며 생각..
그가 들판에 나간 건 마음이 어지러워서였는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지. 풀과 하늘과 바람이 있었지만 노래는 떠오르지 않았고. 도시에서는 그래도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었는데 어느 날 벽에 가로막혔고, 글과 노래야 쓸 수는 있었지만 마음은 아니라고 말하고. 그러나 그 때에도 새들은 노래하고 있었지. 들판에서는 사람들이 흩어져 일을 하고 있었고 모두 다 아름다워 보였지. 그의 마음과 주머니 속 수첩만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러나 그 때에도 인생은 계속되고 있었고 그리고 그 때에도 새들은 노래하고 있었지 저녁이 다시 찾아왔고 가만히 방에 누워, 창 밖을 차츰 물들이는 어둠을 바라보다, 삶의 귀퉁이 한쪽을 적어보다 어느새 잠들었나. 인생이 여행일 때 모든 건 여행기로 변하고 남겨도 되고 그냥 가도 되는. 그의..
차를 타면 한 시간 반이면 갈 거리인데 버스를 너댓번쯤 갈아타며 집에 오니 4시간이 걸렸다. 무주가 대중교통이 안 좋은 탓도 있겠지만 꼭 이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어디든 동서간의 이동은 힘든걸 보면. 대구에 가면 괜히 움츠러들곤 한다. 낯선 도시임과 동시에 대구가 띠는 정치색이 색안경으로 작용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대구에 대해 아는 것이 몇 없어, 그 몇 가지 안 되는 단편적인 앎으로 자꾸 판단하려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자격증 시험은 성서공단 내의 산업인력공단에서 치렀다. 생각해보니 공단이라고 이름 붙여진 동네에 가는 것은 처음이지 싶었다. 도로는 널찍하면서 네모반듯하게 정렬되어 있었고 블록마다 공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시티즈 스카이라이프라는 도시경영 게임을 할 때도 공단은 본능적으로 ..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 그리고새로 물길을 트기 위해 힘을 쓰며 사는 것. 당시엔 정말 괴롭고 힘든 일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그 일이 새로운 인연과 삶을 열어주는 경우가 꽤 있다.하지만 그저 하늘의 뜻이겠거니 하며 사는 삶은 자칫 무책임에 빠질 수 있기에그 경계를 세우는 일은 역시 어려운 일이다. 파고들다보면 다시 균형의 중요성까지 생각이 미치지만,그때 그때 모호한 경계 혹은 기준으로 살아낸 삶은 모호한 인생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이러한 삶의 결말이 비극인지 아닌지는 역시 알 수 없지만. 응팔의 마지막쯤 잠시 언급되는 타이밍에 대한 류준열의 나레이션이 생각난다.가끔 꼭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짜놓은 듯 주변의 모든 것들이 맞아떨어지는 이상한 일들이 생기곤 한다.하지만 이 이상한 일들은..